현대 민주주의 초석을 다진 고대 그리스에는 열린 회의 장소로 ‘아고라’ 광장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여러 사람이 다양한 주장을 발표하고, 정책을 알리고, 비판을 수용하며 여론을 수렴하는 자리였습니다. 

민의(民意)를 받아들이고 거르며, 비판을 귀담아듣는 것.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흔들림이 없어야 할 원칙입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 대한민국 행정사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아마도 역사는 그를 권력 지향적이고, 독재(獨裁)적 정치관료(政治官僚) 중 가장 앞줄에 위치한 인물로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필자의 개인적인 추정과 의견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의 ‘비리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이후로, 유은혜 장관이 지휘하는 교육부는 여러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입니다. 

사립유치원에 국공립유치원 입학시스템(처음학교로)을 적용한다고 합니다. 또 민간 유치원에도 국가관리 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을 강제 도입하고,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유치원의 폐원 자유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종합하면, 민간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의 운영과 재정, 사유 재산의 처분을 국가가 관리 통제하고, 묶어 놓겠다는 정책입니다. 

유 장관은 이에 반발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만나지 않겠다고 했으니,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한유총은 우리나라 사립유치원 대부분이 가입한 법정 단체인 만큼, 사립유치원의 여론을 듣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유아교육의 75%를 책임지고 있는 민간의 사립유치원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것, 민의를 수렴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립유치원은 비리집단이니, 유 장관 말처럼 고려할 여지는 없었을까요. 그런데 여기에는 유 장관의 언행이 과연 우리나라 정체성인 민주공화국 행정에 부합하는 것인지 판단할 중요한 변수가 있습니다. 

지난 몇 개월 우리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사립유치원=비리집단’ 논란은 ‘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교묘하게 편집되고 왜곡된 주장이 난무하고 목소리가 큽니다. 그러다보니 ‘사립유치원=적폐집단’이라는 인식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사립유치원이 욕을 먹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연 2조원의 막대한 재정지원금을 받는다는 것, 대부분 사립유치원이 그러한 정부 지원금을 마음대로 유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립유치원 비리 논란을 촉발시킨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사립유치원이 ‘대부분 아예 작정을 하고 정부를 속여서 세금을 훔쳐갔다’고 했습니다. 

언론이 그러한 논조로 보도를 이어 오고 있으며, 정부(교육부)는 유 장관을 필두로 시행령 개정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립유치원은 정부로부터 유치원 운영에 유의미한 지원금 내지는 보조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있으니, 세금을 훔쳐 갔다는 주장도 애초부터 어불성설입니다. 

당정이 주장하는 ‘사립유치원에 지원하는 연 2조원 재정지원금’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1조6000억원 누리과정비는 유치원이 아닌, 사립 학부모에 지급되는 지원금입니다. 

학부모들에게 지원되는 교복지원금이 교복가게를 지원하는 정부 보조금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중소기업에 취직한 청년에게 중앙 지방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그 돈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돈이 아닌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2조원 가운데 누리비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교사 기본급보조금(2500억원)으로 유치원 교사에게 직접 지급되니, 유치원 재정 보조금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극히 일부인 학급운영비(800억원)도 원비 인상을 제한하는데 따른 보상 성격이니, 이 또한 유치원 재정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정부가 생색낼 수 없습니다. 

사립유치원에 지원되는 정부 세금이 실제 없으니, 사립유치원이 작정하고 정부 세금을 훔친다는 주장은 사실에 기초한 주장이 아닙니다. 

남은 한 가지, 사립유치원 대부분이 비리집단이라는 주장도 사실과는 다릅니다. 

박용진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년∼2018년 감사결과 전국 1878개 사립유치원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며 해당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전체 사립유치원은 비리집단으로 매도됐습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있습니다.

대부분 5년치 영수증을 챙기는 과정에서 단순 착오, 업무미숙 등으로 자료를 누락했거나 등의 이유로 발생한 ‘경미한’ 사항이었습니다. 기관 조치도 주의나 시정 통보에 그쳤습니다. ‘비리’라고 규정할 수 있는 건수는 전체 4%정도에 불과합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일이 커지자 오죽했으면 부산시교육청이 보도자료를 내고 주의 통보를 받은 유치원이라고 해서 모두 비리유치원은 아니라고 해명까지 했습니다.

물론 사립유치원 비리를 덮어 넘기고 감싸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비리는 드러내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비리로 집단 전체가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 쓴다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박용진 의원도 결국에는 국회 법안소위 심사에서 '비리'라고 할만한 적발 건수가 3~5% 정도라는 사실을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습니다. 분노한 사립유치원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경고한 이후 일입니다. 

누명이 드러났으니, 교육부의 태도는 바뀌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립유치원을 더욱 옥죄고 있습니다. 

유은혜 장관은 얼마 전 ‘국가가 사유재산을 몰수하려 한다’고 비판의 소리를 내고 있는 사립유치원에 대해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다며 법적 처벌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 지원 거의 한 푼 없이 수십억 개인 자산을 쏟아부어 만든 유치원 운영을 국가가 국공립처럼 통제 관리하고, 재산권 처분마저 간섭하겠다고 하니,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립유치원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합당한 주장입니다. 

유 장관은 그러나 자신의 결정에 대해 반발하는 사립유치원을 향해 ‘법적 처벌’을 운운하며 입을 다물 것을 경고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폐원하겠다는 유치원을 향해서도 공정거래법을 들먹이며 처벌을 경고한 적도 있습니다. 

유 장관이 교육부 장관인지, 검찰청이나 사법부 총수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법무부 장관이라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소리를 연이어 남발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 법치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일지라도 저런 소리가 가능할까요. 

그러나 유 장관 말대로 일이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법에 기준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쳐서, 혹은 정부 실세의 위세에 눌려서 그렇게 호락호락할까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글머리에서 ‘아고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이 가능한 나라, 민주주의 사회일 것입니다.   

근현대 민주·자본주의 국가 역할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국민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처벌을 하겠다는 유 장관의 발언은 민주주의 체제와는 동떨어져 보입니다. 관(官)이, 민(民)을, 눈 아래로 깔아 내려보는 오만과 독선, 편견이 보입니다. 

유 장관의 요즘 행보를 보면, 실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논란이 있지만, 프랑스의 절대 군주 루이 14세의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짐이 곧 국가다”. 

유 장관은 마치 자신이 법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자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누리과정 교부금을 놓고 많은 진보 진영 교육감들이 朴정부를 시행령 정부라고 비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법을 건너뛰고 정부 맘대로 정책을 결정한다는 항의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또 한 가지. 우리가 지금 비난과 분노, 갈등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비난과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 기술.

나라가, 민심이, 조각조각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