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사립유치원 사태 6개월..갈등과 불신만 초래
[이슈 진단] 사립유치원 사태 6개월..갈등과 불신만 초래
  • 최대호 기자
  • 승인 2019.03.05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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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비리 프레임' 사립유치원 적폐집단 전락
사활 건 개학연기 학부모 염려에 하루만에 철회
다양·자율·창의성 갖춘 민간 유아교육 위축 우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교육부 시행령 반대 총궐기대회'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교육부 시행령 반대 총궐기대회'

최대 사립유치원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지난 4일 사활을 걸고 돌입한 개학연기 투쟁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사립유치원 감사결과 공개로부터 촉발돼 6개월간 이어진 사립유치원 사태는 정부-민간교육자-교육수혜자 간 갈등과 불신만 남긴 채 일단락됐다.

정부와 일부 정치권의 '비리 프레임'에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은 한순간에 비리·적폐집단으로 내몰렸고 학부모들은 자녀의 유아기 교육을 책임지는 유치원을 불신하게 됐다.

교육자 스스로가 '유아교육 사망선고'라는 무지막지한 표현까지 동원했지만 비리 프레임에 덧씌여진 여론은 사립유치원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지난 110여년 동안 국가가 여력이 없어 책임지지 못한 유아교육을 사재를 털어 대신한 민간의 유치원 운영자들의 교육자적 자존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에서는 더이상 다양·자율·창의성을 갖춘 민간의 유아교육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주최 토론회 안내문 캡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주최 토론회 안내문 캡처.

◇사태의 발단은 '비리집단 오명'

이번 유치원사태를 조명하는 언론은 지난해 10월을 주목한다. 교육위원회 경력 3개월의 여당 초선의원인 박용진 의원이 지난해 10월11일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한 전국 시도교육청의 사립유치원 감사결과 때문이다.

박 의원은 감사결과 공개에 앞서 시민단체 등과 함께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10월5일)를 열었고, '토론회 제목부터가 사립유치원을 비리집단으로 규정한 것'이라는 판단을 한 사립유치원 측은 토론회 당일 현장을 찾아 집단 항의에 나섰다.

언론은 당시 토론회를 주요하게 다뤘고, 세간의 관심 선상에 오른 박 의원은 엿새 뒤 국정감사장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년~2018년 감사에 적발된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다.

언론과 일부 정치권은 "원장들이 명품백을 사고 성인용품도 구매했다"며 국민 감성을 자극할만한 가장 부도덕해 보이는 소재만을 찾아 부각했다.

이때부터 '비리유치원 명단' '유치원 비리리스트'라는 단어는 사립유치원을 표현하는 대표 수식어가 됐다.

하지만 실상 감사적발 내용은 단순 회계처리 미숙에 따른 적발과 그에 따른 '개선' '권고' '통보' 등 96%가 경미한 사항이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달성..총대멘 유은혜

정부는 '국민여론'을 무기로 들고 나왔다.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가관리 회계시스템 에듀파인 강제, 감사 적발유치원 교육청 홈페이지 공개 등 사립유치원에 대한 각종 규제정책을 내놨다.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박용진 의원이 사립유치원의 반발을 산 이른바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을 발의했다.

이 모든 일은 사립유치원 감사결과 공개 직후 이뤄졌다. 친문(親文)계 여성 국회의원인 유은혜 의원이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한 그달, 감사결과 공개부터 정부대책, 관련 법안 발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이자 교육부가 2017년 12월 발표한 유아교육공공성강화 방안의 핵심 의제인 국공립유치원취원율 40% 달성을 가시화하기 위해 유 장관이 총대를 멨다는 게 당시 민간 유아교육계의 시각이었다.

학부모가 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을 "직접" 받아야 하는 이유!
자료 이미지.

◇정부가 말하는 '사립유치원 2조 지원금'의 진실

유은혜 교육부와 여당은 지난해 10월25일 국공립유치원 조기 확충, 개인 사립유치원 법인화 추진, 유치원 휴·폐업 시 엄단 조치 등을 담은 A4 용지 21페이지 분량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내놨고 사립유치원은 발끈했다.

당시 교육부는 사립유치원에 매년 2조원의 세금이 지원되는 만큼 그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전재를 깔았다.

하지만 사립유치원 2조원 지원은 정부의 거짓말이었다.

법령에도 명시된 '학부모·교사 지원금'을 정부가 '사립유치원 지원금'으로 포장하며 '공공성 강화'의 핵심 명분으로 삼았던 것.

한유총은 이에 대해 "사립유치원은 민간 개인이 사재를 털어 설립하고 국가보조금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곳인데도 정부는 사립유치원이 마치 국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진실을 왜곡하며 시행령 개정 등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일선 사립유치원 설립자·원장들은 휴·폐원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한유총에 전달했다. 실제 학부모나 교육지원청에 폐원 방침을 통보한 사립유치원 수도 점점 늘었다.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사립유치원 관련 기관장 간담회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한승희 국세청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호선 경찰청 차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사립유치원 관련 기관장 간담회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한승희 국세청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호선 경찰청 차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개인설립 유치원 압박에 권력기관 총동원

유은혜 장관은 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 발표 당일 사립유치원 측 반발이 커지자 공정거래위원회를 언급했다. 단체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엄포였다.

엿새 후인 지난해 11월1일에는 유아교육법 지침을 변경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형사처벌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후 유 장관은 그해 12월 유아교육법령 등에 대한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에듀파인 강제 사용 및 폐원시 학부모 동의 의무화, 시정명령 불이행 시 처벌 강화 등이 골자였다. 박용진 의원 발의 유치원 3법이 국회에서 공전하자, 내놓은 자구책이었다.

한유총은 정부 시행령에 대해 "비리집단으로 매도돼 어쩔 수 없이 폐원하는 유치원의 숨통까지 조이려 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산권까지 부정하는 처사"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한유총은 동시에 소통을 촉구했다. 시행령 개정안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유치원의 이야기를 들어봐달라는 요구였다.

유 장관은 그러나 대화 대신 '엄정 대응' 발언을 이어가며 사립유치원 압박을 지속했다.

지난달 20일에는 한유총 소속 사립유치원이 에듀파인 도입을 거부할 것으로 전해지자 "'국세청·경찰청·공정위 등과 함께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감사·형사고발' 카드도 꺼내 들었다.

특히 한유총이 당국의 소통을 촉구하는 시행령 반대 총궐기 집회를 예고하고 나서자 유 장관은 국세청·경찰청·공정위 등 핵심 권력기관 수장들을 만나는 퍼포먼스로 '엄정 대응' 기조를 재차 피력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일부 유치원이 개학연기에 돌입한 4일 오전 대구의 한 유치원에 경찰관이 배치돼 있다. 이날 오전 취재진이 유치원 주변에서 개학 연기를 취재하자 유치원 측의 신고가 접수돼 인근 지구대 경찰관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날 오전 대구지역 사립유치원 43곳이 개학을 연기했으나 자체 돌봄서비스는 운영됐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일부 유치원이 개학연기에 돌입한 4일 오전 대구의 한 유치원에 경찰관이 배치돼 있다. 이날 오전 취재진이 유치원 주변에서 개학 연기를 취재하자 유치원 측의 신고가 접수돼 인근 지구대 경찰관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날 오전 대구지역 사립유치원 43곳이 개학을 연기했으나 자체 돌봄서비스는 운영됐다.

◇교육부-한유총, 아이 볼모 기싸움..상처만 남은 유치원 사태

한유총은 지난달 28일 정부의 입장 변화가 있을 때까지 3월 새학기 개학을 미루겠다며 개학 연기 투쟁을 예고했다. 교육부는 곧바로 '엄정 대응' 방침으로 응수했다. 한유총과 교육부 두 기관 모두가 사실상 학부모·유아를 볼모로 한 기싸움에 나선 것.

개학일(3월4일)까지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교육부는 한유총의 소통 요구를 무시했다. 끝내 양측 간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나 협의는 없었다.

양측의 강대 강 대립에 결국 개학연기는 현실이 됐다. 다행히 개학연기에 참여한 사립유치원 대부분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려했던 보육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유총과 정부를 향한 국민적 비난은 쇄도했다.

학부모와 아이들을 위해 국민 앞에 고개를 먼저 숙인 건 한유총이었다.

한유총은 "유아교육현장 혼란 초래와 학부모 염려를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당일 조건 없는 개학연기 투쟁 철회 방침을 밝혔다.

한유총 관계자는 "민간의 영역에서 사재를 털어 공익적 교육을 담당한 것이 이토록 비난받을 일이었던가 하는 회의감이 든다"며 "교육이 좋아 유치원을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이제 더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간 유아교육계 한 관계자는 "사립유치원 사태는 정부와 유치원, 그리고 국민 상호 불신만 남긴 가슴 아픈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며 "아무쪼록 대란 없이 사태가 정리된 만큼 정부는 사립유치원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 제도적으로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귀 기울이기 바라며 사립유치원은 진정한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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