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일 헌재 앞에서 맞불집회 열려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결정되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과 위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뉴스1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결정되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합헌과 위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뉴스1

6년 만에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둔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각계 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연이어 열렸다.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들도 기자회견을 열며 맞불을 놨다.

결정이 이뤄지는 오후 2시가 가까워 오면서 양측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들은 마이크 음량을 높여 가며 낙태죄 폐지 촉구와 반대를 각기 치열하게 외쳤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각계 단체들의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소년과 종교계 및 학계 등에서도 낙태죄 위헌 판결을 각각 촉구했다.

낙태죄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각계 단체들은 형법상 낙태죄가 △태아의 생명만을 내세워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고 △국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제하고 △여성을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도구로 인식하는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평화의샘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속 남성아씨는 "태아의 생명은 모체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며 "그런데 모체의 권리를 박탈한 채 부여되는 태아의 생명이 과연 행복하게 살 권리까지 부여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신애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목사는 "'낙태는 죄'라는 교회의 정조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교회 여성이 있다면 기독여성들의 자랑스러운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일 것"이라며 "여성이라면 임신을 중단한 여성이 감옥에 갈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안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단체도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청소년들에게만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는 것도 온당하지 못하다며 완전한 폐지를 재차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강모씨는 "헌법재판소의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낙태 허용 사유에 청소년을 추가하는 것도 반대한다"면서 "청소년이든 아니든 임신 중절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발언자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너희를 닮은 예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했는데, 이 한 마디에 우리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 몸으로 정의돼버렸다"며 "낙태죄를 폐지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한 최소한의 바리케이드를 설치해달라"고 발언했다.

청소년단체는 학교와 사회가 올바른 성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들은 "학교에서는 남자들과 놀다가는 임신을 하고 미혼모가 되거나 불법적인 낙태를 해야 한다면서 죄책감만 심어 주었다"며 "그러면서 태아의 생명과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은 우리를 성희롱하고 체벌하던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곧이어 '성과재생산포럼'이 기자회견 배턴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형법에 낙태죄가 생긴 1953년부터 국가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했다"며 "오늘 우리는 국가가 헌법의 이름으로 하는 답을 듣게 되고, 낙태죄가 폐지된 대한민국에서 여러 성적 주체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지게 할 것"이라고 발언을 시작했다.

오후 1시부터 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자당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낙태죄 하나로 인구를 통제할 수 있는 믿음이 정부와 국가의 안이한 태도를 만들었다"며 "낙태죄도 여성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과는 상관 없이 인구 수 때문에 빼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민주 노동당 부대표는 "태아의 인생을 정말로 생각했더라면 우리는 다른 미래를 보고 있을 것"이라며 "출산과 육아를 분절해서 보는 시각과 여성의 앞으로의 인생과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 국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몇주부터 사람인지 지루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여성의 신체와 인권 및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고, 낙태죄 폐지는 그 첫 시도가 될 것"이라고 울먹였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이 헌법재판소 정문 오른쪽에서 열리는 동안 정문 왼쪽에서는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국민연합)이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헌법재판소 맞은편에서도 '낙태죄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시민연대)가 맞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낙태죄 유지 120만명 서명 국민 뜻 거스르지 마라' '태아는 사람입니다' '12주는 생명이 아니고 13주는 생명인가'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낙태죄 유지 판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연합은 영·유아를 집회 현장에 동반하고 피켓을 들게 했다. 또 태아의 사진을 인쇄해 들고 "태아는 생명이고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여성들 역시 낙태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면서 "낙태가 여성의 권리고 해방인 것처럼 선전하지만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받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연대는 "낙태가 여성의 권리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태아가 독립적 인간생명이라는 생물학적 기본 전제를 무시한 것"이고 "잉태된 순간부터 태아는 독립적인 한 인간이므로 아기의 생사를 타인이 결정할 수 없다"며 태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논리를 거듭 강조했다.

경찰은 낙태죄 폐지를 둘러싸고 상반된 의견을 가진 이들이 서로 충돌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헌법재판소 앞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경찰 6개 중대 360명을 배치했다.

일반 시민들과 외신들의 관심도 이어졌다. 외신 기자들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 주최측과 시민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민들은 방청을 위해 헌법재판소 앞에 긴 줄을 섰다. 윤은별씨(24)는 "완전히 낙태를 금지하는 나라가 없고 현재 헌법재판관 구성을 봤을 때 불합치 결정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며 "결정을 지켜본 뒤 저녁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