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김정호 교수.
김정호 교수.

6년 전 실리콘밸리의 주요 IT 기업들을 견학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에도 갔었는데, 거기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무환경이었다. 드넓은 사무공간에 엄청나게 긴 테이블들만 놓여 있었다. 칸막이 같은 것은 없었다. 직원들이 필요할 때 아무 자리나 앉아서 일을 한다고 했다.

칸막이로 구획된 한국의 사무실들에 익숙해져있던 터라 그처럼 개방된 사무실은 당황스럽기 까지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구글이나 트위터 등 다른 곳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무실이 대부분 개방형이었다.

사무실을 그렇게 만든 이유는 콜라보레이션, 즉 협력을 촉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각자가 할 일과 그 방법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찾기 어려운 업종이기 때문에 상호 협력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독불장군처럼 똑똑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해진다. 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또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무실들은 아직도 칸막이가 높다. 일의 성격이 아직 과거형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각자 해야 할 일이 미리 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쳐줘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지시와 이행, 명령과 복종, 이것이 지금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였다.

그러나 미래의 세상에서는 누구도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을 것이다. 뭘 해야 할지 미리 정할 수 있는 일들은 로봇과 AI의 몫이 될 것이다. 정해져 있는 일들은 로봇과 AI가 인간보다 더 잘할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누구도 미리 정해줄 수 없다.

인간은 목표부터 방법까지 모두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럴수록 혼자 끙끙거리기보다 여럿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낯을 가리지 말아야 하고 또 의사소통에 능해야 한다.

지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20년 후에야 사회에 나가게 된다. 당연히 미래에 필요한 인재상이 교육에 반영되어야 한다. 독서실에 틀어박혀서 답을 외우고 연습 문제를 푸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그보다는 사람 사귀는 법. 대화하고 의견을 모으는 방법 이런 것이 더 필요하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시켜야 할 교육은 낯가리는 습성을 고쳐주는 것이다. 낯을 가리면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좁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낯을 가리지만 훈련을 통해서 상당 부분 바꿀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인은 그런 훈련을 너무 안 했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인이 일본인 다음으로 낯을 많이 가린다. 그래서 유학을 가서도 외국 친구들을 잘 못 사귀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필자 자신도 낯가리는 성향 때문에 미국 유학시절에 파티 한번 제대로 즐겨보지 못했다. 외국어 교육보다 낯 안 가리는 법 가르치는 것이 외국 친구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이다.

아파트에서 이웃 사람 만났을 때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통로의 주민을 만나도 서로 외면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상이다. 그럴 정도로 한국인은 낯을 많이 가린다. 그럴 때 엄마부터 이웃에게 인사하고 말을 걸어 보자. 그러다 보면 아이도 낯선 사람에 다가가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다.

집에 엄마나 아빠의 손님이 온 시간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손님과 같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자리에 아이들도 불러보라. 손님에게 정식으로 인사하고 대화하는 자리에 참가하게 해보라. 처음에는 모두가 불편할 것이다. 손님도 불편하고 아이들도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 쌓여갈수록 부모도 아이들도 낯선 사람과 잘 지내는 노하우가 생길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의 아이들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까지 우리 어른들이 살아온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지금의 지식들 중 많은 것이 필요 없어질 것이다. 지식보다는 사람을 사귀고 협력하는 방법을 익히게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미래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