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전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김정호 교수.
김정호 교수.

"마누라 자식만 빼고는 모두 바꿔라!"

이 한마디에 수만명 삼성 사람들은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했다. 변하기 어려운 직원들은 최소한 변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초일류기업 삼성전자다.

상명하복, 즉 리더는 명령하고 구성원들은 거기에 따르는 이 문화는 한국인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삼성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SK, 롯데가 같은 기업들이 모두 그런 방식으로 경영되었다. 그 덕분에 빨리빨리 하면서도 좋은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심지어 예술까지도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서 성공했다. 케이팝이 바로 군대식 예술의 성공작이다. 케이팝의 에센스는 칼군무다. 10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철저하게 설계된 짜여진 각본에 따라 몸을 움직여서 율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한국의 퍼포머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퍼포먼스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철저하고 가혹한 훈련이다. 아이들은 열두세살에 뽑혀서 7년 8년씩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성공하려면 기획사에서 하라는대로 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예술도 상명하복식으로 했다. 그 덕분에 성공했다.

그러다보니 상명하복은 우리의 삶의 방식으로 굳어졌다.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묻는다. 후배는 선배의 말에 따를 마음의 자세가 갖춰진다. 학교, 공무원 사회도, 교회가 모두 그랬다.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가 성공의 원동력이었지만 엄청난 부작용도 잉태했다. 질문의 싹을 없애버린 것이 치명적이다. 정주영은 "이봐 해 봤어?"는 지레 겁먹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질문을 못하게 하는 효과도 분명 있다.

윗사람이 말하면 복종만 있을 뿐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질문을 안하고 못하는 태도는 학교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이기를 요구받는다.

가정에서도 '엄마 아빠 말씀 잘 듣는' 아이가 돼야 한다. 질문을 자주 하면 자칫 버릇없는 아이, 윗사람에게 덤비는 아이로 찍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질문하는 능력이 퇴화된다. 아니 마음 속에서 질문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다.

2010년 G20회의장에서 질문 능력이 퇴화된 한국인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폐막 연설을 마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개최국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중국 기자가 질문하려는 것을 막아가면서까지 다시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권고했지만 끝내 한국 기자들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영어 때문이 아니라 질문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오바마의 말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이렇게 자란다면 우리 아이들은 20년 후 모두 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로봇과 AI가 못하면서 세상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 미래다. 남의 말 잘 듣는 것에만 익숙해진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 갔다 오면 "선생님에게 질문 많이 했니?" 하고 묻는다고 한다. 이제 한국의 엄마들이 그래야 한다. 선생님도 그래야 한다. 자기 말을 잘 들으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그러자면 선생님과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명령 복종의 관계를 버리고 아이와의 대등한 관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가 엄마 말이 틀리고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할 때 지금처럼 힘으로 찍어 누르지 말라. 아이가 옳으면 옳다고 인정해줘야 한다. 엄마가 틀렸다고 자인해야 한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선생님이 생각 못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리고 아이의 말이 맞을 때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선생님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선생님의 자존심과 권위는 무너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새로운 교육이 가능하다. 미래 교육은 부모와 선생님이 아이와 대등해질 수 있음을 받아들일 때, 아니 아이가 더 나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