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험하게 기르시라
아이를 험하게 기르시라
  • 한국유아교육신문
  • 승인 2018.04.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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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전 연세대 교수
김정호 교수.
김정호 교수.

20년 후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간 우리 아이들은 사막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미리 정해진 길이 없다는 점에서 미래를 사막에 비유했다. 사막에서처럼 아무 곳이나 걸어 갈 수 있지만 그 끝에 마실 물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일단 걸어가 봐야 한다. 미래 사회에서 직업은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사정이 비슷하다. 사업을 시작한 10명 중 아홉은 실패한다. 식당 같은 뻔한 일들을 하면서도 그럴진대 직업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세상에 발을 디딜 우리 아이들은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어떻게 할지 알 수 있는 업무들은 로봇과 AI 들의 몫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자질은 용기와 끈기다.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해봐야 한다. 그래야 직업이 될지 아닐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가 필요하다.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용기 못지않게 끈기도 중요하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영어 단어가 보다 그 의미를 분명히 해준다. 도전하다보면 실패를 겪기 마련이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 잘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자면 뜻대로 안됐을 때 좌절해서는 안된다. 실패에 짜증내고 포기하기보다 그저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야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물론 즐길 수 있다면 최선이고.
 
지금처럼 아이를 기르면 용기도, 끈기도 갖춰줄 수 없다. 우리 엄마 아빠들은 아이를 너무 곱게만 기르려고 한다. ‘금이야 옥이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조심 조심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무슨 용기, 무슨 끈기를 기대하겠는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면 더욱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아이가 몸에 멍이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누가 감히 우리 아이에게 이랬냐’며 야단이 난다. 자연이 유치원, 어린이집도 과보호 모드로 맞춰진다.

이래 가지고는 아이가 부모에게서 자립을 못한다. 매사를 부모에게 의지하게 됐다. 집 밖 놀이터에 나가는 것조차 엄마에게 허락을 받는 지경이 됐다. 심지어 대학에 엄마가 따라다니고 군대에 간 아들 반찬까지 만들어 부치는 지경이 됐다.
 
이런 아이들은 용기 대신 편안함과 안전만을 추구하게 된다. 뭔가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이유를 찾아보고 새로 시도하는 대신 짜증과 분노가 솟구친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이 그렇게 길러진 한국인의 마음습관을 반영한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정상이 됐지만 이건 분명 비정상이다. 특히 미래의 당신의 아이가 맞닥뜨릴 세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부모에게 아이는 당연히 귀하다. 하지만 귀하다고 싸고돌면 아이는 타락한다. 귀할수록 냉정해야 한다. 고생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귀한 그 아이가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내지 않겠는가.

오늘부터 당신의 아이들에게 일을 주시라. 옷입기, 밥먹기, 씻기, 방청소하기, 밥상에 수저 놓기 같은 일들을 아이에게 맡기길 바란다. 당연히 잘 안 될 것이다. 아이들이 잘 할 줄 몰라서 우물거리는 것을 보고 있느니 차라리 엄마나 아빠가 직접 하는 것이 더 빠르고 속도 편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라. 

아이가 놀이기구에 올라갔다 떨어지는 것도 감수하시라. 당연히 마음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 세상은 원래 위험하다. 위험한 놀이를 하면서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사고를 스스로 극복하면서 끈기, 회복탄력성이 생긴다. 세상은 원래 위험하지만 용기와 끈기가 있다면 기쁨과 성공도 제공해준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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