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전 연세대 교수

김정호 교수.
김정호 교수.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집안일은 신경 안 써도 된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을 것 같다. 본인이 그렇게 자랐던 만큼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대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어리다면 공부를 하라고 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집안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대신 피아노 학원을 보내거나 또는 마음껏 밖에 나가서 뛰어놀라고 할 것 같다. 아이를 집안의 상전처럼 모시고 있는 셈이다.

당신이 그러고 있다면 당장 고치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에게 일을 시키시라. 아이 자신의 일은 물론이고 집안일도 시키길 바란다.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지 말고 서툴더라도 스스로 먹게 하라. 세수도 혼자 하게하고, 자기 옷은 자기가 입게 하라. 물론 아이의 행동이 어설퍼서  흘리고 비뚤고 오래 걸릴 것이다. 엄마 아빠가 해주는 것이 더 속편할 것이다. 그래도 해주지 말길 바란다. 이것은 교육이다. 더디고 어설프고 손이 더 많이 가더라도 아이의 일은 아이에게 맡기시라. 그러면서 아이는 책임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장난감만 가지고 놀 때보다 동작도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자기 일에 조금 익숙해지면 집안일도 맡기길 바란다. 밥상 차릴 때 수저 놓기, 빨래 널고 개기, 화분에 물주기, 동네 수퍼에 물건 사러 갔다 오기 등은 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아이에게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부터 하시라. 너도 엄마 아빠와 똑같이 우리 가족의 멤버이기 때문에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임을 알려주라. 아이가 일을 마치면 아이의 경험이 어땠는지,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등에 대해서 질문하고 대화하시라.

잘 했을 때 진심으로 칭찬해주길 바란다. 용돈으로 일한 대가를 주기보다 칭찬이 더 낫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면 아이는 성취감을 맞볼 것이다. 책임감과 참을성과 기획력도 길러질 것이다. 아이가 20년 후 세상,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세상에 나갔을 때 반드시 필요한 덕목들이다.

사실 엄마, 아빠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세상에서는 집안일 같은 것 안하고 공부만 해도 됐다. 어떻게든 대학만 나오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괜찮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리고 나면 일하는 습관이 안 들었더라도 회사가 알아서 일을 시켜줬다.

20년 후의 세상은 지금과는 무척 다를 것이다. 스스로 길을 만드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대학의 모습부터 지금과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혁신적인 미네르바대학(Minerva School)이 벌써부터 그렇게 하고 있듯이 대부분의 대학들은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하는 사람, 질문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사람을 골라서 뽑을 것이다. 그때까지 대학이 남아 있다면 말이다.

교과서와 학원에 매달리는 교육은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의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버린다고 해도 20년 후 그 지식들은 쓸모없어질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뿐 아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주입식으로 지식을 주입받는 동안 아이에게는 고약한 마음의 습관이 형성된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습관, 수동적인 마음의 습관이다. 미래에 그것은 치명적이다. 시켜서 하는 일들은 로봇의 몫이 될 터이니 말이다.

당신의 아이는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일을 시켜주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일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교육법은 아이에게 일을, 진짜 일을 맡겨주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어릴 적에 일하는 경험이 성인이 된 후의 성공에 결정적임을 보고해왔다. 대표적인 것은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의사였던 베일런트 박사 부부의 연구였다. 30년간 450 명의 삶을 어릴 적부터 관찰한 결과 어릴 때 집안일 등을 통해 근로의 습관을 습득한 사람들은 커서도 성공의 확률이 높고, 건강상태도 좋음을 밝혀냈다. 한국인들에게도 유효한 연구결과라고 생각한다.

교과서의 지식들을 외워봤자 20년 후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지식 자체가 낡는 데다가 수동적 습관만 자라난다. 가장 좋은 미래교육은 자신의 책임 하에 인생을 미리 살아보게 하는 것이다. 당신의 아이가 귀하다면 지금부터 집안일 시키는 것부터 시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