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개혁에 부모가 나서야 한다
학교 개혁에 부모가 나서야 한다
  • 한국유아교육신문
  • 승인 2018.05.16 12: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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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전 연세대학교 교수
김정호 교수.
김정호 교수.

한국유아교육신문에 게재한 칼럼 시리즈를 통해서 지금까지 필자가 써왔던 내용은 가정에서 부모의 아이교육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20년 후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하려면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좋은 마음의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마음습관 교육에 있어 가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가장 중요하고 활동적인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아이의 미래는 큰 영향을 받는다. 잘못하면 쓸모없는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문제 답 맞히는 꼼수나 배우느라 아이 인생이 낭비될 수 있다. 가정뿐 아니라 학교도 좋은 마음습관을 들여주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학교를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첫 번째의 이유는 학교의 담당자들이 변화의 필요를 심각하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소개하고 싶다. 혁신적 교육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네르바 대학의 켄로스 이사가 기존 대학의 총장들을 대상으로 자기 대학의 교육내용이 학생의 졸업 후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대학 총장들의 96%가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반면 학생들을 채용하는 기업의 CEO들은 기존 대학 교육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1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교육의 공급자인 대학 총장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도 그런데 그 밑의 학교들은 어떻겠는가. 학교 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나 교장, 교육공무원들은 대부분 지금 자신들이 꼭 필요한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직접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큰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두 번째 이유는 설령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습관을 들이기 위한 교육은 기존의 강의식, 주입식 교육과 다를 수밖에 없다.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교육방법을 배우는 것부터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사고와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웬만한 교사, 웬만한 공무원이라면 그런 변화를 달가워할 이유가 없다. 뭔가 새로운 교육을 원하는 부모들이 혁신학교나 대안학교를 선택하지만 그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측면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학교 선택제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예산을 1인당으로 쪼개서 아이들에게 바우처로 지급한다. 아이(또는 부모)는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골라서 바우처를 납부한다. 국공립과 사립 모두 선택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국공립유치원 국공립초등학교도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게 된다. 선택이 의미를 가지려면 국공립 및 사립 구분 없이 모든 유치원과 학교들이 교육내용의 구성에 있어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스웨덴과 네덜란드, 홍콩 등 많은 나라들이 이미 택하고 있는 방식인데 우리나라는 유치원, 그중에서도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만 이 제도가 적용되어 왔다. 초등학교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것 못지않게 큰 문제는 교육내용의 획일성이다. 모든 초등학교들이 같은 교육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본래 매우 다양한 교육내용을 제공하고 있던 사립유치원들마저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 내용을 강요받고 있다. 사립유치원을 국공립유치원과 똑같이 만들려는 정책을 멈춰야 한다. 교육의 다양성은 클수록 좋다.

조금 더 급격한 변화를 원한다면 대형 초등학교들의 경우 하나의 학교를 분할해 두 개의 독립된 학교로 만들고 교육내용도 독립적으로 만들게 하는 것이다. 물론 선택은 학생 및 학부모의 몫이다. 이렇게 하면 학생의 선택이 교사와 교장에게 매우 큰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제도적 틀 하에서 학생과 부모들이 마음습관 교육을 원하게 되면 학교들도 어쩔 수 없이 그런 방향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시장은 세상의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한다. 변하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이다. 수요자들이 가혹한 채찍을 들고 있는 셈이다. 반면 나랏돈으로 안전을 보장받는 학교들은 변화의 필요를 덜 느낀다. 세상은 변하는데 학교는 과거의 행태에 계속 안주하려고 한다. 학교선택제는 부모들이 그런 학교들을 향해 들 수 있는 아주 작은 채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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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2018-05-17 11:30:53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이대노는 국가미래가 너무나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