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인터뷰] 허태근 교수(교육학 박사)
4차산업혁명의 시대.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유아기의 교육이 특히 더 그렇다. 다행히도 이제껏 우리 유치원의 교육은 그러한 시대의 요구를 앞서 나갔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체험을 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부가 유아교육의 지원을 늘리고 자신들의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이때 우리의 유아교육이 도리어 위기라는 소리가 나온다. 官이 틀을 만들고 일일이 ‘통제’하는 유아교육, 시대를 역행하는 것은 아닐까?
“정부 지원과 통제는 별개..유아교육 현장의 다양성 자율성 창의성 보장해야”
“유치원도 매너리즘에 빠져선 안돼..경쟁력 갖추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필요”
Q. 유아교육의 다양성, 자율성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년 전부터 유아교육 현장에 아이러니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유아 대다수의 전인교육을 담당해온 사립유치원에 공적 입김이 강해지면서다.
사립유치원은 개인이 자본을 투자해 설립하고, 설립자의 건학정신에 따른 자율적 교육이 이뤄지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2013년 만 3~5세 유아에게 공통으로 제공하는 교육·보육 과정인 누리과정이 시작됐고 이때부터 정부 개입이 노골화됐다.
학부모에게 지원해야 할 누리과정비를 유치원에 주고, 유치원 운영 전반에 대한 간섭을 시작한 것이다. 누리과정비 지원과 함께 정부는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명분으로 통제도 강화했다.
저마다 다양하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해 온 사립유치원의 특수성을 배제하고 교육프로그램마저 ‘자율’이 아닌 ‘획일’을 강요했다.
일반적인 사립유치원의 교육은 국공립유치원의 교육보다 훨씬 자유롭고, 학부모들의 요구에 민감하고, 아이들에게 더 체험적이고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교육을 제공한다.
교사, 원장 등 많은 유아교육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정부의 사립유치원 통제와 함께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에 따라 이제 사립유치원은 존립마저 불확실한 상황이 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우리 유아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 창의성도 함께 위기인 시대다.
Q. 정부가 사립유치원으로 대변되는 민간의 유아교육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불합리한 감사가 문제다. 불합리한 감사를 명분으로 사립유치원의 교육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개인에 유치원 설립을 적극 권장했던 만큼, 사립학교 법인 감사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립유치원의 토양에 맞는 감사 기준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사립유치원은 국가가 인정한 비영리 교육기관으로 지난 100여 년 동안 국가가 못한 영유아 교육을 대신 책임져 온 곳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설립 배경과 그동안의 유아교육 발전에 공헌해온 부분들을 무시하고 국공립유치원에 적용해 온 법적 잣대를 들이대고 획일화된 평가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혀 다른 체제 아래 존재하는 두 분류의 기관에 한 가지 잣대로 같은 평가, 같은 감사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주고 왜 몸이 크거나 작으냐고 질타하는 것과 다름없다.
Q. 우리 유아교육의 미래를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립유치원의 원생과 학부모도 국공립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세금 내는 국민이다. 차별 없는 지원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단, 그러한 지원과 관리가 ‘통제’가 돼서는 안 된다.
물론 평가와 감사, 법적인 규정은 어느 분야에서나 꼭 필요하다. 단지 사립유치원 현실에 감안한 법적 근거와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사재를 출연해 유치원을 설립한 이들에게 유치원을 보다 떳떳하고 보람되게 운영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부는 그 본질과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사립유치원 옥죄기만을 하고 있다.
정부는 각종 규제와 지나친 감사·관리·감독 행정에서 벗어나 설립자의 지위를 보장하고 자율적인 교육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행정의 관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획일성을 버려야 한다. 학습자율권을 부여해야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혁신교육이 가능하다.
Q. 사립유치원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나.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 정부의 유아교육 정책 기조가 지속한다면 사립유치원은 머지않아 존폐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은 수많은 사립유치원의 폐원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유아교육을 공립 중심으로 몰아가는 것에 적극 대응하고 사립 유아교육의 본질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이 선행돼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사립유치원 설립자와 원장의 지위 유지는 요원해진다.
아울러 선진 유아교육을 실현해야 하는 의무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유치원 내부 경쟁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지니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며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경쟁력이 관건이다.
절대 매너리즘에 빠져선 안 된다. 사립유치원의 본질을 지키고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면 고유의 특색교육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해 유아교육의 올바른 기틀을 다져놓아야 한다.
사립유치원만의 경쟁력과 차별화는 필요조건이 아닌 필수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Q. 유아기의 교육, 왜 중요한가.
유아기는 인생의 결정적 시기다.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절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이때 판가름 난다.
사람은 성격에 의해, 또 습관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기에 인생에서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 사립유치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인성교육이다.
-허태근 교수는
명지대 유아교육 (학사)
강남대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중부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
한국유아리더십 학교장
정목교육가족 이사장
한국 원운영아카데미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유아CEO과정 주임교수(2003년~2017년) 역임
저서
-‘성공에도 공식이 있다’ ‘히트’ ‘캐치’ ‘100점 엄마가 0점 아이를 만든다’ ‘조·부모가 차린 밥상교육의 사가지 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