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교육에도 늘 돈이 들어간다. 돈의 흐름을 감시하면 돈 쓰는 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할 수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돈의 흐름을 감시받기 때문에 자율성이 거의 사라졌다. 국공립과 사립 모두가 그렇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사립유치원이었는데, 이제 그들도 돈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감시당하게 됐다. ‘에듀파인’ 이야기다.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방안 일환으로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을 도입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 사진=교육부 홈페이지.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방안 일환으로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을 도입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 사진=교육부 홈페이지.

◇ 에듀파인, 사립유치원의 국공립화 완성

에듀파인(Education Finance)은 정부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용 행정 및 회계 전산 프로그램이다. 

사립유치원들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에듀파인은 하나의 회계 프로그램이다. 

정직하게 회계 처리를 하는 곳이면 에듀파인을 쓴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투명성이 높아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에듀파인은 그런 장점을 덮고도 남을 만한 큰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공무원들이 사립유치원의 실질적 국공립화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물품을 조달할 때 ‘학교장터’와 똑같은 가격으로 하길 요구하는 규제다. 

학교장터란 공립학교들이 물품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쇼핑몰 사이트다. 사립유치원들이 이 사이트를 이용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은 여기와 같기를 요구 받는다. 

◇ 에듀파인은 자율성 제약하고 낭비 조장

그 가격과 비교해서 낮든 높든 지적 대상이 된다. 사립유치원들은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도 비싸게 사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국공립 유치원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해 왔다. 절약하고 값을 깍는 것이 몸에 밴 사립유치원들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지만, 그렇게 안 하면 회계부정으로 지적당할 수 있을 테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낭비를 조장하는 셈이다.

에듀파인 운영을 외부에 아웃소싱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역시 사립유치원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 에듀파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출 때마다 ‘지출품의-결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은 조직에서 일일이 서류 작성을 하고 결재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거래의 내용을 시스템에 업로드 하는 것 역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공립유치원들은 회계와 행정업무 처리를 위해 대개 3명의 전담 직원을 두고 있지만, 예산이 국공립 절반에 불과한 사립유치원에서는 전담 직원 한 명을 두기도 쉽지가 않다. 

그나마 원아 100명을 넘어가는 큰 규모의 유치원들은 전담 직원을 두기 시작했지만, 중소규모 유치원들은 전담 직원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한다.

◇ 원장·원감이 회계처리 매달려···만일 공립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러다보니 원장이나 원감이 회계 처리에 매달리는 곳이 많다. 유치원의 경영과 교육에 전념해야 할 사람들이 그야말로 잡무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다른 조직들 같으면 이럴 때 세무사나 회계사에게 맡긴다. 

그러나 교육부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처리를 밖에 맡기지 못하게 철저히 금지한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돼 있다. 에듀파인 관리를 외부에 맡기고 그 비용은 원장이 사비로 지출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편법이어서 오래 갈 수 없다. 에듀파인은 단순한 회계처리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립유치원의 자율성을 제약하고 낭비를 조장하는 제도다.

<이 기사는 유아교육정책 전문가 김정호 경제학자가 쓴 ‘맘이 선택케 하라’ 책 내용을 편집 발췌한 내용입니다>

 

‘보조금 없는 유치원은 에듀파인 예외’
교육부령으로 조항 삭제, 여전히 논란

개정 전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개정 전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2019년 교육부령으로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이 변경되면서 2020년부터 사립유치원에도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인 'K-에듀파인'이 본격 도입됐다. 당사자인 사립유치원계와 협의 없이 진행됐던 일방 행정이었다. 

에듀파인은 여전히 논란이다.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는 민간 운영 유치원에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지적이 있다. 

좀더 현실적인 문제는, 세금으로 풍족하게 운영하며 민간 사립유치원보다 행정직원을 몇 배 많이 두고 있는 국공립유치원과는 달리, 민간 유치원의 현실은 국공립처럼 에듀파인 전담 직원 수 명을 따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사립유치원은 에듀파인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국공립유치원이나 초중고교 학교법인과는 달리 국가 지정정보처리장치인 에듀파인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립유치원에는 인건비나 학교운영비를 보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 

당시까지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제53조의3)은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의 교비회계에 속하는 예산·결산 및 회계 업무는 교육부장관이 지정하는 정보처리장치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단서 조항을 뒀다. 같은 조항에는 ‘다만, 사립학교법 제43조 제1항에 따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인건비 및 학교운영비에 한정한다)을 받지 아니하는 학교와 유치원은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결국 교육부령으로 이 단서 조항을 삭제, 사립유치원에도 에듀파인 적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사립유치원에 예외를 두었던 단서 조항은 ‘다만, 법 제43조1항에 따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인건비 및 운영비에 한정한다)을 받지 않는 각종학교 또는 외국인유치원은 그렇지 않다’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