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초등입학 학제개편안 '파문'

유아를 온종일 교실 의자에 잡아둔다는 발상 어디서?
교육계 "유아 교육에 대한 무지 드러낸 것" 거센 반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하며 물의를 빚고 있는 박순애 교육부 장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하며 물의를 빚고 있는 박순애 교육부 장관.

교육부(장관 박순애)가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5세로 1년 낮추는 학제 개편 업무계획을 보고한 것이 밝혀지자, 이에 대한 교육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유아교육의 목표는 여러 다양한 경험과 즐거운 놀이를 통해 행복한 유아를 키우는 일이다. 큰 줄기가 그렇다. 한국뿐 아니라 교육 선진국들이 놀이를 통한 유아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다.  

그렇게 교육 받아야 할 유아를 종일 교실 의자에 앉혀 놓고 가르치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나왔을까.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교육계는 정부가 ‘유아교육’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은 1일 성명을 내고 “이번 학제개편안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경제 논리만으로 바라보고 있는 한심한 정책”이라며 “만5세 초등 취학은 유치원 및 초등 저학년 교사들과 학부모들까지 모두가 우려하고 반대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만5세 유아들의 발달과 학습권, 행복권을 고려한 교육정책이 마련돼야 하며,  교육부는 즉시 학제 개편을 철회하고 현장을 배제한 정책 시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도 이날 성명을 내고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는 발상은 아동 발달 단계와 교육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연맹은 “유아교육은 아동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만3~5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놀이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며 “초등학교 1학년의 교육과정을 만 5세 아동들에게 적용했을 때 아이들의 인지발달상 적절한지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선행돼야 마땅함에도 이번 학제개편안은 그러한 절차 없이 경제적 논리만을 적용한 탁상 행정”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서울교사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을 내고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이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경악했다”며 “놀이 중심 유아 누리교육과정과 초등교육과정은 교과의 유무, 교육의 방법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합은 “누리교육과정과 초등교육과정의 이러한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취학 연령 하향화는 교육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없는 탁상공론”이라며 “정부가 유아들의 교육에 진정성이 있다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학 연령을 낮추는 초등학교 학제개편안에 반대하는 교원 단체는 이들 진보 성향 단체 뿐만이 아니다. 보수 성향 교원 단체 등도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한국유아교육행정협의회는 1일 ‘초등 취학 연령 하향 반대’ 공동요구서를 대통령실, 교육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전달하고 만5세 초등 취학 정책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요구서를 통해 “만5세 초등 취학은 경제논리만 앞세워 유아의 특성과 발달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히려 조기 사교육만 조장하고 유아의 행복권을 박탈할 뿐”이라며 “학부모와 교육계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학제개편 추진에 분명히 반대하며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현재 만3~5세 유아는 발달 단계에 따라 놀이 중심 누리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교실 크기와 형태, 화장실과 급식 등 시설 환경도 해당 연령 유아들의 심신 상태를 고려한 것”이라며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심도 있는 의견조사나 연구조차 없이 단순히 ‘요즘 애들 커지고 똑똑해졌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이 시기 유아의 경우, 1~2개월 차이만 나도 큰 발달 격차를 보이는 현실인데, 연령이 다른 유아를 일률적으로 한 교실에 몰아넣은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본생활, 교우관계, 학습에서 만5세 유아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학부모들도 뒤쳐질 것을 우려해 조기 사교육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부가 학제개편을 추진하는 이유를 요약하면 먼저,  의무교육 연령을 1년 앞당겨 교육의 국가책임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입학 연령을 낮추면 학생들의 사회 진출과 결혼 연령도 빨라질 테니 저출산 고령화 시대 인력 보충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유와 주장을 대고 있지만, 교육부는 정작 유아의 발달단계에 적합한 교육에 대한 고민은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 학제개편안은 유아 교육계나 학부모 등과 어떠한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