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김혜영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김혜영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아주 오래전에 본 고부갈등 드라마가 기억난다. 며느리가 예쁜 꽃을 사와서 기분 좋게 거실에 장식했다. 이를 본 시어머니는 금방 시들 걸 돈 낭비라고 며느리를 탓하며, 시장에서 사온 조화로 바꿔놓았다, 조화가 촌스럽다고 생각한 며느리는 몰래 치워버린다. 시어머니는 화를 냈고, 며느리와 크게 말다툼이 일어났다. 이때 퇴근한 아들은 두 사람을 말리다가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앞으로 우리 집에 생화든 조화든 다시는 들여 놓치마!” 필자는 이 남편의 해결방식이 교육부의 유아 영어교육 금지법 제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부가 영어교육 금지법을 시행하려는 이유는 유치원, 어린이집과 초등 1,2학년 방과 후 활동으로는 지식습득 교육보다는 놀이와 돌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금지법에 대한 학부모와 법학자들의 문제 제기에 국민의 한사람으로 깊은 공감을 하며, 혹여 무리하게 추진될 때 발생할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더하여 필자는 영어교육자로서 본 사안이 지니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 법안을 제안한 교육부 관계자들의 믿음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

첫째, 영어 학습이란 유아들의 성장발달을 저해할 만큼 무거운 지식을 주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둘째, 이 시기의 아동에게 외국어를 배우게 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합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에 배운 영어는 선행학습에 해당하여, 공교육 정상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기영어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우리 사회의 오랜 영어교육 과열 현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영어유치원으로 포장된 고액 유아영어학원을 비롯하여, 조기유학, 영어 마을, 몰입교육 등 매번 신드롬을 일으키며 많은 부작용을 낳았던 전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인간에게 여러모로 유익한 일이라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타문화를 접하고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경험해보는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일이다. 유아기에 영어 학습을 시작했던 중·고등학생이 반대의 경우보다 영어 학습동기가 더 높다는 국내 연구 결과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이렇듯 영어학습의 본질은 최소한 무해한 것인데 유독 대한민국 사회에서 왜곡되고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왜 영어교육을 아동에게 금지해야 하는가? 우리가 금지해야 할 것은 영어교육이 아니라 잘못된 영어교육이다. 무조건 막고 보기 전에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그 원인을 좀 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첫 번째 원인은 유·아동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이 올바르지 못한데 있다. 영어학습은 지식습득이 아니다. 특히 유아영어학습은 알파벳을 놀잇감으로 하는 성장활동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타문화의 노래와 이야기와 놀이 활동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잘못은 유아영어학습의 목표를 선행학습으로 설정하는데 있다. 유아영어수업은 학습동기부여의 과정이어야 한다. 암기, 규칙학습, 강요된 학습 부담은 동기를 저하한다. 학습량이나 학습시간이 적정해야함은 물론이며, 유아시기의 인지발달에 맞는 지도가 아이들의 평생 영어 학습동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원칙은 어린이집이나 방과 후뿐만 아니라 유·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설 영어교육기관에서도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정부는 아동들을 교육하는 기관이 교육원칙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관리 감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유아 영어교육기관의 인증제, 영유아 영어교사의 자격요건 부여 등의 실질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영어교육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무분별한 조기교육의 폐해에 대한 학부모 교육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는 무조건 집안에 꽃을 못 들여 놓게 하기 보다는 좀 더 저렴한 꽃은 없는지 좀 더 세련된 조화는 없는지 다툼이 일어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