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근 교육학박사

그레샴 법칙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16세기 영국왕실이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품질이 나쁜 동전을 대량으로 찍어내게 되었는데 이 악화(惡貨)가 기존에 은90%로 만들어진 양화(良貨)를 시중에서 사라지도록 한 것을 빗대어 나온 말이다.

이 명언은 현재 대한민국 사립유치원이 처한 실정과 일맥상통한다. 마치 공립은 양화이고, 사립은 악화인양 적폐세력 운운하며 몰아내려고 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1980년대 정부는 유아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러나 초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유치원의 설립을 국가가 나서서 하기는 어려웠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사립유치원의 설립을 권장해야 했다. 이런 교육정책에 따라 설립된 사립유치원은 대한민국 초석교육의 대들보로 100여년을 지켜왔음에도 이제 용도폐기를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쟁점은 사립유치원을 공립과 같은 잣대로 감사를 하는 부당함이다.
사립은 말 그대로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30~40억을 들여 잘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누리과정으로 교육을 공교육화 시키더니 행정상 편의를 이유로 20~30%정도의 지원금이 유치원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유치원비의 모든 돈이 국가의 것인 양 공립의 감사제도를 도입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사립 몸에 공립 옷을 입혀 놓고 안 맞는다고 비리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 아닌가.

두 번째 쟁점은 제도적 모순이다.
사립유치원에 재산세와 주민세를 물리면서 필요에 따라 학교법인을 운운한다. 제도적으로 비영리라 수익을 남길 수도 없게 해놓고 손실이 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설립자가 떠맡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운영상의 어려움에도 원비 인상 및 유치원 양도·양수조차 안 되니 그만둘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직면해 있다.

설립초기부터 그런 조건을 달고 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했어야 정당하지 않은가? 이런 제도라면 사립유치원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이미 저출산 여파로 자연도태 될 곳이 많은데 현 상황이 지속되면 사립유치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쟁점은 국·공립유치원의 40% 증설이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급격하게 추진되고 있으나 이는 나랏돈으로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공립단설유치원을 하나 짓는데 100억원가량 어마어마한 돈이 들고, 둘째, 병설유치원의 경우 원아 한 명 당 월 130만원의 국가 예산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것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명백한 악화가 아닌가. 또한 교육의 투명성을 외치고 있으나 금번 비리유치원 명단에 적지 않은 병설 유치원이 포함되어 있었음은 유치원의 공립화가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원금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바우처 제도 취지에 맞게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립유치원이 최종 소비처가 되어 현 감사체계의 문제에서 오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선택을 받기 위해 사립유치원들은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니 이것이 최적의 대안이라 생각한다.

국가는 ‘신뢰의 원칙’을 추구해야 한다. 사립유치원을 제도권에 넣어 놓고 옥죄며 악화(惡貨)라고 매도하는 것은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로 국민의 한 사람인 사립유치원의 설립자와 원장들, 5만 교사들을 대량실업의 사태로 내몰 수 있다.

그럼에도 ‘만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 이를 믿으며 정부가 말하는 악화는 결국 양화라는 사실을 꼭 밝히고자 전 국민에게 호소하는 바이다. 의식 있는 관계자들의 통찰을 바라며 사립 유아교육인의 간절한 소망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