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정부 보조금 받지 않는 사립유치원은 에듀파인 적용 예외' 규정
교육부령으로 협의 없이 조항 삭제, 민간 유치원 재산권·자율성 무시

개정전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구조문.
개정전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구조문.

우리는 국가의 정책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법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권력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지난해 교육부령으로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이 변경되면서 올해부터 사립유치원에도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인 'K-에듀파인'이 본격 도입됐다. 당사자인 사립유치원계와 협의 없이 진행됐던 일방 행정이었다. 

에듀파인은 여전히 논란이다.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는 민간 운영 유치원에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지적이 있다. 

좀더 현실적인 문제는, 세금으로 풍족하게 운영하며 민간 사립유치원보다 행정직원을 몇 배 많이 두고 있는 국공립유치원과는 달리, 민간 유치원의 현실은 국공립처럼 에듀파인 전담 직원 수 명을 따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사립유치원 에듀파인 문제는 21대 국회가 풀어야할 숙제다. 무엇보다 사립유치원의 운영 현실에 대한 이해와 타협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에듀파인 문제를 되짚어봤다. 

◇ 에듀파인은 왜 문제가 됐나...현실 모르는 공권력

에듀파인은 교육부가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개정을 통해 사립유치원에도 사용을 강제하겠다고 예고하면서부터 논란이 됐다. 

동일한 사립학교법 적용을 받는다 하더라도 상위 초중고 학교와는 달리, 사립유치원에는 정부가 주는 운영 보조금이 없는데 왜 국가회계관리시스템을 사용해야 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사립유치원은 에듀파인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상위 초중고교 학교법인과는 달리 국가 지정정보처리장치인 에듀파인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립유치원에는 인건비나 학교운영비를 보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 

당시까지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제53조의3)은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의 교비회계에 속하는 예산·결산 및 회계 업무는 교육부장관이 지정하는 정보처리장치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단서 조항을 뒀다. 같은 조항에는 '다만, 사립학교법 제43조 제1항에 따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인건비 및 학교운영비에 한정한다)을 받지 아니하는 학교와 유치원은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명시한 것이다.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학교법인과는 달리, 예외적으로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는 사립유치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인정한 내용이었다. 

당시 사립유치원계는 "국공립이나 법인 체제로 운영하는 학교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에 동일한 재무회계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며 "사립유치원의 운영 현실을 감안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립유치원은 정부지원도 없다. 학부모에게 주는 교복지원금이 교복매장 지원금이 아닌 것처럼 정부가 주장하는 연2조 원 대 누리비 지원은 사립유치원이 아닌, 학부모에게 지급되는 유아교육경비 지원"이라며 "그런데도 정부가 사립유치원에 막대한 지원을 한다는 명분으로 합의 없이 민간에 정부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결국 지난해 2월 교육부령으로 이 단서 조항을 삭제, 사립유치원에도 에듀파인 적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사립유치원에 예외를 두었던 단서 조항은 '다만, 법 제43조1항에 따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인건비 및 운영비에 한정한다)를 받지 않는 각종학교 또는 외국인유치원은 그렇지 않다'로 바뀌었다.  

사립유치원에 연 2조 원대 지원을 하고 있다는 교육부 주장에 대해 사립유치원계가 누리과정비 지원은 학부모 지원금이라고 강력 반발하자, 정부는 '회계투명성 강화'라는 또 다른 명분을 내세웠다. 

◇ 국공립유치원 직원 수 사립유치원의 2.5배...원아1인당 교육경비도 2배, 덩치부터 달라...국공립처럼 에듀파인 전담직원들 따로 둘 수 없는 사립 현실 무시

김정호 박사의 2018년 논문 내용 중 일부.
김정호 박사의 2018년 논문 내용 중 일부.

교육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사립유치원에도 국공립유치원처럼 국가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 의무 사용을 강행하자, 사립유치원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는 동떨어진 시스템이라는 한숨이 나왔다. 

국가 세금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국공립유치원과는 달리, 민간 운영 사립유치원은 행정 인력이나 재정 규모면에서 볼 때 국공립에 비해 영세하고, 불확실한 변수도 많기 때문이다. 

우선 국공립과 사립유치원은 회계 등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전담 인력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에듀파인을 사용하는 국공립·사립학교나 공립유치원의 경우 수입이나 지출, 총괄 등 관련 업무를 맡는 전문 행정 인력을 3명 정도는 따로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민간의 유치원은 재정여건 상 국공립처럼 회계 업무를 전담할 직원들을 여러명 따로 채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일선 사립유치원은 에듀파인 사용을 위해서는 국공립처럼 적어도 3명 정도의 행정 전문 인력을 따로 둬야 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운영비용 면에서 국공립을 따라갈 수 없는 사립입장에서는 현재도 에듀파인 사용이 억지 부담이다. 

더구나, 지난 2018년 발표된 민간연구(김정호 경제학 박사(전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한국제도경제학회 정기학술대회 발표 논문)를 보면 국공립유치원 원아 1인당 세금으로 투입되는 교육경비는 114만 원인 반면, 사립유치원이 받는 원아 1인당 원비는 53만 원(정부가 사립유치원 학부모에 지원하는 누리과정비 포함) 수준이었다. 올해 들어 누리과정비가 2만 원 인상됐으니, 사립유치원 평균 원아 1인당 원비는 55만 원 정도로 보면 된다.  

국공립이 사립보다 두 배 가량 비용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인데, 사립유치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부분이다. 양쪽 비용지출이 차이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원아 수가 비슷한 공립 단설유치원과 사립유치원의 교직원 현황을 비교해 볼 때, 공립은 교직원 수가 사립보다 2.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아 수 118명(6학급) 기준 공립단설의 직원은 31명, 사립은 12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립입장에서는 국공립에 투입되는 교육경비 수준으로 원비를 인상한다면 에듀파인 전담 직원들을 두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원비인상제한과 학부모 반발, 다른 유치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 때문에 원비 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