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대책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의 유아교육은 점점 공무원이 주인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 유아교육에 있어서 사립유치원은 다양성의 마지막 원천이었다. 초·중·고등학교들은 공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모두 획일화됐다. 

중고등학교 숫자상으로는 사학들이 많지만 국공립과 다를 바 없이 됐고, 몇 개 남아 있던 자율형 사립고들마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교육감들이 칼을 갈고 있으니, 수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사립유치원은 매우 다양했다. 학부모들에게 적응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원아가 없으면 문을 닫아야하기 때문에 유치원들은 아이와 학부모의 취향을 교육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유치원에 누가 내 아이를 보내겠는가. 아이의 재능과 학부모의 취향이나 사정이 다양한 만큼 사립유치원의 교육과 운영도 다양해졌다. 숲유치원, 몬테소리, 발도로프, 프로젝트 수업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했고 번성했다. 

그런데 사립 학부모에 교육경비(누리과정비)를 지원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 빛을 잃은 사립유치원의 다양성과 자유

누리과정은 유아교육법에 규정된 무상 유아교육의 일부라도 실현하기 위해 2012년 이명박 정부 하에서 본격 시동을 걸었다. 당시 모든 5세 유아의 부모에게 매월 22만 원이 전자카드 형태로 지급됐고,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3-4세까지 지원이 확대됐다. 

다들 돈에만 신경을 쓰느라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누리과정 의무화에 따른 심각한 문제가 시작됐다. 바로 교육의 획일화다. 

누리과정 이름으로 획일적 교육이 시작됐다. 정부가 돈을 주는 만큼 감독과 통제를 받아라, 국공립유치원과 똑같이 하라,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흘러갔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개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립유치원 특성을 배척하며 사립유치원을 비리집단으로 몰아간 것이다. 

사립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각종 규정과 규제가 만들어졌다. 존재의 기반을 잃은 사립유치원들은 폐원을 선택하고 있다. 

많은 사립유치원이 문을 닫는데 공립은 급증한다. 남아 있는 사립유치원은 공립유치원처럼 변해 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유아교육은 획일성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다. 교육의 다양성이 더욱 필요한 시기에 한국은 정반대의 길로 들어섰다. 

◇ 획일화로 치닫는 유아교육

‘유아교육의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가 늘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은 국공립 유치원과 같은 교과과정을 실시해야 한다.

유아교육의 획일화에 대해 원로 유아교육학자 임재택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임 교수는 지난 2017년 6월 15일자 한겨레 보도에서 “정부 누리교육과정은 하루 종일 아이들을 비좁은 공간에 가둬 두고, 수험생처럼 주입식으로 가르치도록 한다. 교사는 13권에 이르는 교사용 지도서에 따라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규격화된 상품처럼 만들어진다...이제 중앙집권체제의 획일화된 누리교육과정과 표준보육과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권 체제의 다양화와 운영의 자율화가 이뤄져야 한다...유아교육 현장이 일일 교육 계획안에 매달리지 않고, 300여 개에 달하는 평가지표에서 벗어나게 되면, 아이들은 몸과 마음과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고,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누리과정으로 인한 획일화. 다시 말해 다양성이 파괴되면서 생겨나는 문제점은 주로 사립유치원에 국한된 일이다. 

공립유치원은 원래부터 다 비슷하니까, 누리과정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더 획일화될 것이 없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사립유치원과 유아교육 전문가 등의 이러한 지적을 반영해 ‘놀이중심, 유아중심’으로 바뀌었다. 

◇ 개정 누리과정도 마찬가지···‘공공성’으로 포장한 ‘통제’

하지만 그것마저 여전히 획일성은 벗어나지 못했고, 놀이와 교육의 질 모두 오히려 떨어진다는 현장의 지적이 있다. 예를 들자면 교재나 교구의 사용을 많은 부분 줄이라고 하는 규제가 그렇다. 

학부모들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재미있게 놀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배우길 원한다. 사립유치원들이 많은 투자를 해서 교재 교구를 사용해 온 것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며 배우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놀이중심, 아이중심’ 교육을 하라면서 교재 교구의 사용을 규제하다 보니 놀이는 재미없어지고 유치원 교육의 질은 떨어진다. 

‘놀이교육’은 원래 사립유치원의 영역이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놀이를 할 때 교구를 쓰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는 교육청보다 사립유치원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 

특성화 프로그램의 제한도 유치원의 다양성을 해친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발레도 하고 영어도 배워 오길 원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요구에 맞춰 사립유치원들은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강사를 초빙해서 전문적 음악수업을 하기도 하고, 체육수업도 한다.

그러나 누리과정이 의무화되면서 오후 1시까지 정규 시간에는 그런 활동이 금지됐고, 방과 후 하루 1개만 허용된다. 

특성화 교육이 놀이중심 수업이라는 개념과 반드시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녀가 학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보다 유치원에서 방과 후 특성화교육을 선호하는 부모가 많다.  맞벌이 부부일수록 자녀 교육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이 걱정되고 아쉽다.  

<이 기사는 유아교육정책 전문가 김정호 경제학자가 쓴 ‘맘이 선택케 하라’ 책 내용을 편집 발췌 했습니다>